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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견지(夷堅志) - 중국 송나라 시대 괴담집 2

이견지(夷堅志)는 중국 송나라 시대의 저명한 필기체 지괴소설집으로서, 남송(南宋) 때 홍매(洪邁)가 민간에 떠도는 괴이한 사건을 듣고 저술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그 당시의 사회생활, 종교문화, 윤리도덕, 민간 풍속 등 송나라 시대 사회상을 파악할 수 있다. 이 책의 이름은 『열자(列子)·탕문(湯問)』에 기록된 “산해경(山海經)은 대우가 돌아다니면서 본 것이고, 백익이 알고나서 이름 지은 것이며, 이견이 듣고 나서 기록한 것이다.(大禹行而見之,伯益知而名之,夷堅聞而志之)”라는 내용에서 유래한다. 즉 홍매 자신의 저작을 산해경에 견준 것이다. 이 책의 구성은 원래 『초지(初志)』, 『지지(支志)』, 『삼지(三志)』, 『사지(四志)』로 각각의 지(志)는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의 천간..
이견지(夷堅志)는 중국 송나라 시대의 저명한 필기체 지괴소설집으로서, 남송(南宋) 때 홍매(洪邁)가 민간에 떠도는 괴이한 사건을 듣고 저술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그 당시의 사회생활, 종교문화, 윤리도덕, 민간 풍속 등 송나라 시대 사회상을 파악할 수 있다.

이 책의 이름은 『열자(列子)·탕문(湯問)』에 기록된 “산해경(山海經)은 대우가 돌아다니면서 본 것이고, 백익이 알고나서 이름 지은 것이며, 이견이 듣고 나서 기록한 것이다.(大禹行而見之,伯益知而名之,夷堅聞而志之)”라는 내용에서 유래한다. 즉 홍매 자신의 저작을 산해경에 견준 것이다.

이 책의 구성은 원래 『초지(初志)』, 『지지(支志)』, 『삼지(三志)』, 『사지(四志)』로 각각의 지(志)는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의 천간(天干)순으로 다시 집명(集名)을 매겨, 『초지(初志)』는 200권(매 집마다 20권), 『지지(支志)』, 『삼지(三志)』는 각각 100권(매 집마다 10권), 『사지(四志)』는 갑집(甲集), 을집(乙集) 각각 10권으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절반이 소실되어 206권이 현전한다. 애당초 양이 방대하다 보니, 『사고전서총목제요(四庫全書總目提要)』에서는 “한 사람의 손에서 나와 권질이 『태평광기』의 열에 일곱 여덟에 이르는 것은 오직 이 책뿐이니, 또한 좋은 일들 중에 뛰어나다고 말할 만하다.”라고 극찬하였다.
홍매(1123~1202)는 남송 요주(饒州) 파양(鄱陽) 사람이다. 자는 경려(景廬)고, 호는 용재(容齋)다. 형 홍괄(洪适)ㆍ홍준(洪遵)과 함께 홍호(洪皓)의 아들로 ‘파양삼홍(鄱陽三洪)’ 중 한 명이다. 고종(高宗) 소흥(紹興) 15년(1145) 박학굉사과(博學宏詞科)에 합격했다. 이후 중서사인(中書舍人)과 직학사원(直學士院), 동수국사(同修國史)를 지냈다. 금나라에 사신을 다녀온 뒤 공주지주(贛州知州)가 되고, 무주지주(婺州知州)로 옮겼다. 효종(孝宗) 순희(淳熙) 13년(1186) 한림학사(翰林學士)가 되어 『사조국사(四朝國史)』를 지어 올렸다. 영종(寧宗) 때 단명전학사(端明殿學士)로 치사(致仕)했다. 만년에는 향리에 머물면서 저술에만 전념했다. 시호는 문민(文敏)이다. 학식과 저술이 뛰어났는데, 특히 송나라의 전장제도(典章制度)에 밝았다. 저서에 『용재수필(容齋隨筆)』과 『이견지(夷堅志)』, 『야처유고(野處類稿)』, 『사기법어(史記法語)』, 『만수당인절구(萬首唐人絶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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